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베르투 파우캉 (문단 편집) == 지도자 경력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1.r7.com/Falc%C3%A3o%20sele%C3%A7%C3%A3obr%20atleticopr%20090211%20450x388.jpg|width=100%]]}}} || || '''{{{#029C55 브라질 감독 시절 파우캉 }}}'''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후, [[브라질 축구 연맹]]은 파우캉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아직 아무런 감독 커리어도 없던 그를 느닷없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는 1990 월드컵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브라질 축구 연맹]]은 다음 월드컵을 대비하고자 선수단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고 선수 시절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줬던 파우캉에게 대표팀 선수들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1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 준우승을 거두어 축구협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파우캉은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영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고 결국 1991년에 1년도 되지 않아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파우캉은 1991년 [[클럽 아메리카]]의 감독으로 부임해 1991년 인터- 아메리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2년에는 [[CONCACAF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때가 그의 감독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1993년 인테르나시오나우의 감독으로 부임해 한 시즌을 치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dn.mainichi.jp/73.jpg|width=100%]]}}} || || '''{{{#ffffff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파우캉[* 오른쪽의 일본인은 가와부치 사부로 당시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이다.] }}}''' || 그러던 1994년, 파우캉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의외의 선임으로 평가했다. 당시 [[일본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 경력이 많은 인물을 선임하겠다고 밝히고 [[텔레 산타나]]를 선임하려 했지만 산타나가 자신을 따르는 코치진을 포함해서 10억엔에 달하는 급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 축구 협회는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고 선임을 포기했다. 전 프랑스 대표팀 감독 미셸 히달고와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였던 [[오스발도 아르딜레스]]에게도 타진했지만 결국 선임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 축구 협회는 꿩 대신 닭이라고 클럽 아메리카에서 좋은 지도력을 보여줬고 한차례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던 파우캉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파우캉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후 네덜란드 2부리그에 소속된 SBV 엑셀시오르에서 활동했던 오구라 타카시를 대표팀에 불러들었고 여러 젊은 선수들을 대표팀에 발탁했다. 이때 그는 전술을 세세하게 짜며 선수단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전임 감독 한스 오프트와는 달리 선수들이 알아서 경기를 이끌어가게 놔두었다. 이에 선수들은 "오프트와 다르다."며 당황했고 전술이 별로 세밀하지 않고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그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취임 직후에 친선 컵대회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참패했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패한 후 경기장을 떠날 때 관중들은 "브라질로 돌아가라. 다시는 오지 말라."며 그에게 캔을 던져댔고(...) 결국 그는 경질되어 브라질로 쓸쓸히 돌아가야 했다. [[일본]]에서 팬들에게 캔 투척 세례를 받은 것에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그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감독을 맡지 않고 TV와 라디오에서 축구 패널로 활동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esporteinterativobr.files.wordpress.com/falcao.jpg|width=100%]]}}} || || '''{{{#ffffff 인테르나시오나우 감독 시절 파우캉 }}}''' || 그러던 2011년 4월, 그는 인테르나시오나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인테르나시오나우]]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라이벌 [[그레미우]]를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복귀하자마자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7월 18일, 그는 브라질 리그 10라운드에서 상파울루에게 3:0으로 패한 후 감독에 부임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경질되고 말았다. 2012년 2월, 그는 2010년 브라질 세리에 A로 승격한 [[EC 바이아]]의 축구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 팀에서 공격적인 전술로서 팀이 선전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친 공격적인 전술의 악영향으로 실점이 늘어났고 상대 팀들이 공격 루트를 보다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득점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결국 EC 바이아는 2012년 세리에 A 강등권에 몰리고 말았고 팔캉은 7울 20일 플루미넨시에게 4:0으로 참패한 후 경질되고 말았다. 2015년 9월, 파우캉은 2012년 브라질 세리에 A로 승격한 [[스포르트 헤시피]]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2016년 4월 18일까지 팀을 이끌었고 2016년 7월 인테르나시오나우로 돌아왔으나 불과 한 달 만에 5경기 2무 3패를 기록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2022년 11월 14일, [[산투스 FC]]의 스포츠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https://www.santosfc.com.br/falcao-e-o-novo-coordenador-esportivo-do-santos-fc/|#]] 이후 2023년 8월 4일에 [[산투스 FC]]를 떠났다.[[https://www.santosfc.com.br/nota-oficial-paulo-roberto-falcao/|#]]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